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티고노스 왕조 (문단 편집) === [[안티고노스 2세]]의 선정과 피로스, 외치 === 안티고노스 왕조 마케도니아의 제3대 임금으로 즉위한 안티고노스 2세 고나타스(기원전 277~기원전 239)는 켈트족의 침입과 피로스 1세와의 대립이라는 난제를 마주했다. 그는 켈트족의 침입으로 고통받던 그리스인들이 뭉쳐야 한다고 주장하여 이 연합군을 이끌고 리시마케이아 전투에서 켈트족을 물리칠 수 있었다. 이 공적으로 그는 대외적으로 마케도니아 왕으로 인정받았다. 왕조를 중흥시킨 안티고노스 2세는 성정이 온화하고 관대하여 군주의 인상으로 걸맞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이는 용맹했지만 교활하고 지나치게 야심에 불타는 피로스와의 경쟁에서 종국에 그가 승리하는 요인이 되었다. 이처럼 '따르고 싶은 군주'라는 인상은 안티고노스 왕조 군주들의 하나의 특징인데, 그들의 통치가 수월해지는 한 가지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그후 갈리아인의 침입으로 인해 셀레우코스 제국과의 사이가 좋아져 동맹을 맺었다. 그런데 기원전 275년 로마와의 [[피로스 전쟁]]에서 패배하고 돌아온 피로스 1세가 그 이듬해인 기원전 274년, 아직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단계인 안티고노스 왕조 마케도니아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전쟁의 천재라 불리는 무인의 공격에 마케도니아군은 결국 대부분의 영토와 수도를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곧이어 기원전 272년 아르고스에서 피로스 1세가 뜻하지 않게 사망하자 안티고노스 2세는 다시 뜨거운 환호 속에서 왕위를 이어갈 수 있었다. 그는 서쪽의 일리리아, 동쪽의 트라키아와 친선관계를 구축하고 코린트, 에우보이아, 테살리아에 군대를 주둔시켜 그리스에서 자신의 지위를 확고히 다지는 데 힘썼다. 그러자 마케도니아에 흡수당할 것을 두려워 한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이집트의 지원 속에 '크레모니데아 전쟁(기원전 267~기원전 261)을 일으켰다. 그러나 아테네는 기원전 263년에 항복하고 마케도니아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된다. 크레모니데아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나자, 제2차 [[시리아 전쟁]]이 발발했다. 여기서 셀레우코스 제국의 편을 들어 이집트의 해군을 상대로 큰 승리를 거두었고, 이집트의 영향하에 있던 에게해 여러 섬들의 지배권을 비로소 손에 넣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